몇 년동안의 회사생활을 접어버린 남편은 오사카 가까이에있는 키시와다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여 농업을 시작하였다. 그전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작은 주말농장 비슷한곳에서 재미삼아 시작한 농사가 마음에 들었을까 그는 문제투성이의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때어느정도의 텀을 두고부터 나도 남편을 도와 농사에 힘을 싣기로 하고 같이 때양볕과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농사에 돕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내 몸에는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우울증을 앓고 있던터라 우울함을 그냥 약으로 다스렸지만 문제는 몸에서 생기는 변화였다.
다리, 특히 무릎이 아프고 그렇게 아프던 무릎이 종내는 굽혀지지 않아 걷기에 이상이 생겼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통에 무작정 정형외과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류마티스라는 병명을 앓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나 그약을 먹어도 며칠은 어느정도 차도가 있었지만 아픈건 마찬가지. 의사는 내 약에 예전에는 암환자 들에게 썼었다는 독한약을 처방하였다. 그약을 먹으면 하루 이틀은 방안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고 약기운이 가실때쯤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증상은 그냥 다리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머리가 샤워할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고 입안이 다 헐어 끼니를 흰죽만 겨우 넘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양치도 치약을 쓰면 고통스러우리만큼 입안이 아팠고 다리는 무릎을 굽히지 못해 걷지를 못하게 되었고 지독한 추위를 심하게 느끼며. 빈뇨로 자주 화장실을 찾았고, 또한 동시에 몸의 여기저기에 이상현상이 일어났다.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생기자 구글검색을 통해 단순 류마티스 증세가 아니라 그 이상의 증세들이 동반한것을 자각하고 찾아보다보니 루프스라는 단어가 검색이 되었다. 단순 류마티스라면 그냥 무릎만 아프고 말 것인데 온몸이 비정상적으로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아픈곳 하나하나를 짚어서 검색하여 이게 단순 외과적인 증상이 아님을 혼자 짐작으로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던 정신과와 당시 항암치료제를 처방해준 정형외과의 소개장을 들고 지역 거점 대형병원으로 찾아갔다.
당시 나는 혼자 하루종일 집에서 걷지를 못하고 자주 소변을 보고싶어지는 빈뇨로 두 팔로 기어서 화장실을 가고는 하였다. 한번일어 서려면 몸을 지탱할 여러가지 도구와 과정을 거쳐야했고 일어선다고 해도 겨우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다리를 움직이고는 하던때였다. 집안에서는 그냥 두팔로 기어가는게 걷는것보다 수월할 정도였다.
집이 엘레베이터가 없는 5층이라 겨우겨우 병상이 없어서 미루고 있던 긴키대학병원에 가기위해 나이먹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80대 할매처럼 그렇게 걸어서 1층으로 내려가 남편 경트럭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세가 매우 심할때였는데 어떻게 혼자 일어나 짐을 챙기고 그다리로 5층을 내려가 차에 올랐는지 아직도 실감이 나질않는다.
긴키대학에 가서도 혹시모를 경우를 생각해서 내장 일부를 잘라내어 조직검사를 하였고 먹고 있던 정신과약을 제외한 모든약을 새로 처방받아 들어갈 당시에는 휠체어로 들어갔지만 입원 3주 후 나올때는 두 발로 나올 수 있었다.
20대때 손발끝이 하얗게 질려 피가 안통하는 동통을 어느순간부터 달고 살아 우연히 찾은 의원에서 면역계에 문제가 있어 나이가 들면 어떤 형태로든 몸의 이상증세가 나올거라던 어느 의사의 말이 떠올랐고 정말 그 말이 예언처럼 딱 맞는셈이었다.
지금은 비록 걸을 수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루프스의 통증을 잡기위해 복용하는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으로 난 몸무게가 20킬로 이상이 쪄버렸고 이제는 내 몸에 맞는 옷이 없어 저절로 외출하기를 꺼려하게 되고 종내에는 히키코모리같은 생활을 하는 지금이다.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은 있었지만 이미 뒤룩뒤룩 살이 쪄버려 운동하는것 조차 포기해버린 난 또다른 우울감에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