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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시작한 아빠와의 생활. 청소, 빨래, 설거지, 밥 차리기가 다 나에게로 집중이 되었다.부득이하게 가정 경제 사정으로 엄마와 동생은 따로 읍내에서 살고 아빠와 나는 촌동네로 이사를 가 전기 밥솥도 없이 냄비밥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나의 가정도우미겸 딸내미로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빠는 그다지 어지르는 성격이 아니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방청소 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것 같다. 세간살이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곳 몇 곳 먼지닦고 바닥 쓸고 닦고 하면 나머지는 어찌저찌 되었던것 같다.그러나 남편이랑 살기시작하기부터는 달라졌다.난 항상 빨래와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것 같은데 뭔가 달라진게 하나도 없는것이다. 남편도 나에게 살림실력이 꽝이라는듯이 항시 말하고는 하였다. 그때는 내가 학교도 다니면서 대학원진학공부를 하루종일 하느라 바쁘기도 하였지만 사실 둘 이서 원룸에 살면서 어지르면 얼마나 어지르나 싶기도 하다가도 뭔지 뒤돌아서면 지저분해져있는 방을 발견하고 불가사의하게 생각이 되어졌다.그리고 키시와다로 이사와 방 세칸과 거실 한칸의 더 넓은 집에 살면서 이건 뭐...치우는 시간보다 어지르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고 나는 점점 더 청소를 제외한 최소한의 빨래, 설거지만 하게되었다. 내가 어지르는것은 내가 치우지만 남편이 어지르는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남펴이 걸어가는 모든곳에 떨어져있는 쓰레기들 마스크들 택배상자들 각종 고지서, 우편물 찌끄러기들, 맥주캔, 와인병 등등이 남편의 존재를 알려주는 신호등이 되어 안그래도 느린 나의 치우는 속도를 종내는 포기하는 쪽으로 가게 만들었다. 울 아버지와 함께 살 때도 아버지가 그렇게 어지르는것을 별로 본 적이 없는것 같았는데 이 남자는 가는 곳곳이 쓰레기를 버리고 고대로 두고 치우지를 않는다. 나도 잔소리를 거두고 그냥 방치하게 되어버렸다. 우리집은 이렇게 점점 쓰레기집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청소에 대한 태도는 점점 포기의 상태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이 쓰레기...치우는 의지를 꺼뜨린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정도로 심하게 더러워진 집을 보고 나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나 싶다.항시 집을 깨끗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살만한 정도로 유지하는것 자체가 얼마나 노력이 들어가는일인지 깨닫는 요즘이다. 아...저 쓰레기 들을 어찌할꼬..이 남자는 자랄때부터 청소란걸 모르고 자란걸까 아니면 보고도 치우기를 포기한 내가 문제 일까...의욕상실이다.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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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워킹홀리데이에서 만난 일본신랑을 따라 워킹홀리데이 기간이 끝나자마자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바로 입국을 하였다. 그리고 입국 후 5개월이 지나서야 가족에게 일본으로 왔음을 알렸다. 그사실을 알고난 가족들은 난리가 났고 한국으로 되도록 빨리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오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이미 동거를 시작해 얼마되지 않은 때라 가족의 반대 따위는 무시하고 그대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갔다.그러는 동안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조카들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중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생이 되어갔다.엄마 아빠는 내가 일본에서 일본남편과의 깨볶는 생활을 하는동안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아프고 때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같은 문화와 음식과 공기를 마셔가며 같은 정서와 같은 기억을 공감하며 살아나가는 틈에 나는 어느 한 순간 쑥 혼자만 빠져나와 내가 하고싶은것만 해가며 그렇게 가족들과의 틈새는 벌어져만갔다.내 가족들은 때론 아프면서 때론 힘들어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 혼자만 개인플레이를 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꼭 이곳에서 뭔가를 이루어 가족의 자랑거리가 되어보고자 일본어학교와 전문학교를 다니며 지역명문이라는 오사카대학교의 대학원에 연구생으로 입학도 하였다. 난 그게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잘된일이 될거라 믿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그러나 정작 여기의 생활에 치이고 적응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어느순간 가족과 부모님을 지독히도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내나라 정서를 그리워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원 공부는 수월치 않았고 종내는 정규학생시험에서도 떨어져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어서 나는 더욱더 절망하였다.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우울증을 앓고나서부터 더더욱이 내나라 내가족이 그리워졌고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때가 되어버렸다.우울증으로 하루종일 방안에 쳐박혀 누워만 지내며 그렇게도 사무치게 가족을 그리워하였다.난 내가 필요할때만 가족을 생각하며 그리워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또 그렇지도 않았는지 본인들이 힘들어 질때도 아플때도 변함없이 내 안부를 묻고 연락을 기다리던 부모님이 었다. 하지만 난 정작 내가 필요할때만 부모님을 찾고 한달에 한 번 겨우 할까말까하게 연락을 하고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지내었다.그러던중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보니 우울증에 알콜성 치매라고 하였다. 엄마는 이미 심장질환과 고혈압, 당뇨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난 좀 더 깊은 우울감의 수렁텅이에 빠져나아가기만을 했다.전화로 한마디 위로의 말 조차 거는것도 염치 없어 난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에 아빠의 증세는 지금도 나빠져만 간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런것일까. 눈을 뜨고 밥을 먹고 하루종일 누워있으면서 한국의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현실이 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같은 하늘아래 한 번씩 가서 부모님 얼굴 들여다보며 상태를 보고 형제자매들과 같이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것 어느것도 난 할 수 없다. 이제서야 난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다. 국제결혼이란 부모에게 내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불효이고 이기적인 선택이었다고.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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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워킹홀리데이에서 만난 일본신랑을 따라 워킹홀리데이 기간이 끝나자마자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바로 입국을 하였다. 그리고 입국 후 5개월이 지나서야 가족에게 일본으로 왔음을 알렸다. 그사실을 알고난 가족들은 난리가 났고 한국으로 되도록 빨리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오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이미 동거를 시작해 얼마되지 않은 때라 가족의 반대 따위는 무시하고 그대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갔다.그러는 동안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조카들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중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생이 되어갔다.엄마 아빠는 내가 일본에서 일본남편과의 깨볶는 생활을 하는동안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아프고 때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같은 문화와 음식과 공기를 마셔가며 같은 정서와 같은 기억을 공감하며 살아나가는 틈에 나는 어느 한 순간 쑥 혼자만 빠져나와 내가 하고싶은것만 해가며 그렇게 가족들과의 틈새는 벌어져만갔다.내 가족들은 때론 아프면서 때론 힘들어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 혼자만 개인플레이를 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꼭 이곳에서 뭔가를 이루어 가족의 자랑거리가 되어보고자 일본어학교와 전문학교를 다니며 지역명문이라는 오사카대학교의 대학원에 연구생으로 입학도 하였다. 난 그게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잘된일이 될거라 믿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그러나 정작 여기의 생활에 치이고 적응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어느순간 가족과 부모님을 지독히도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내나라 정서를 그리워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원 공부는 수월치 않았고 종내는 정규학생시험에서도 떨어져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어서 나는 더욱더 절망하였다.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우울증을 앓고나서부터 더더욱이 내나라 내가족이 그리워졌고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때가 되어버렸다.우울증으로 하루종일 방안에 쳐박혀 누워만 지내며 그렇게도 사무치게 가족을 그리워하였다.난 내가 필요할때만 가족을 생각하며 그리워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또 그렇지도 않았는지 본인들이 힘들어 질때도 아플때도 변함없이 내 안부를 묻고 연락을 기다리던 부모님이 었다. 하지만 난 정작 내가 필요할때만 부모님을 찾고 한달에 한 번 겨우 할까말까하게 연락을 하고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지내었다.그러던중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보니 우울증에 알콜성 치매라고 하였다. 엄마는 이미 심장질환과 고혈압, 당뇨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난 좀 더 깊은 우울감의 수렁텅이에 빠져나아가기만을 했다.전화로 한마디 위로의 말 조차 거는것도 염치 없어 난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에 아빠의 증세는 지금도 나빠져만 간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런것일까. 눈을 뜨고 밥을 먹고 하루종일 누워있으면서 한국의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현실이 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같은 하늘아래 한 번씩 가서 부모님 얼굴 들여다보며 상태를 보고 형제자매들과 같이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것 어느것도 난 할 수 없다. 이제서야 난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다. 국제결혼이란 부모에게 내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불효이고 이기적인 선택이었다고.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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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이다.벌교읍내에는 중간에 강이 흐른다.어린시절 몇 살때의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한 날 큰집에서 행사가 있었다.아마도 할아버지 제사였던것 같다.큰집은 제사음식을 장만하기위해 벌교보다 더 촌동네에 사는 작은 어머니들과 고모들까지 모여서 그날은 큰집이 바쁜 날이었다.그러나 내 기억속에 왠지는 모르겠지만 추운데 오돌오돌 떨며 엄마가 나를 찬물에 통째로 집어넣고 나를 때리면서 씻기고 있었다. 나는 엉엉 울면서 왜 나를 차운날에 따뜻한 물도 아닌 찬물로 때리면서 씻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머리가 크고나서 의문이기는 했지만 내 어린시절의 그런 소소한 기억까지 엄마도 같은걸 기억하고 있었으리만무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냥 내가 미워서 체벌적을 목적으로 그랬을까 정도로 대충 묻어갔다. 그런데 그 기억을 엄마도 기억하고 있었다는것에 놀랐다 동시에 내 기억에 착각이 있었다는것과 모든 진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걸 나중에 엄마를 통해 듣게되었다.제사날이라 다들모여서 바쁘게 손을 모아 음식을 해야하는 그날 엄만 큰집에 가기전에 나와 동생을 깔끔하게 씻기고 입혀서 같이 큰집으로 향하였고 큰집 뒤를 흐르는 강가에서 동네 친구들과 노는걸 볼사이가 없이 열심히 음식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며 나타나 나와보니 내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었다.벌교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으로 강가주변으로 펄이 많았다. 난 그날 깔끔하게 입혀놓고 데려간게 무색하게 펄에 온몸이 빠져 새까맣게하고 나타났던 것이었다.음식준비에 눈코뜰새없이 바빴던 엄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새까맣게 펄 투성이가 된 나를 고대로 찬물을 대야에 가득모아 나를 씻긴것이었다. 이것이 그날의 진실이었다.때론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기억자체로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그중에 어떤기억들은 오류있도 착각도 한다.하지만 그 기억에 진실까지 다 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마 엄마가 다 크고나서 그 기억을 기억해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을 엄마가 날 미워해서 차갑고 추운날 나를 추운물이 가득한 대야에 넣어 뒤지게 때렸다고만 기억했을 것이다.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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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동안의 회사생활을 접어버린 남편은 오사카 가까이에있는 키시와다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여 농업을 시작하였다.그전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작은 주말농장 비슷한곳에서 재미삼아 시작한 농사가 마음에 들었을까 그는 문제투성이의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그때어느정도의 텀을 두고부터 나도 남편을 도와 농사에 힘을 싣기로 하고 같이 때양볕과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농사에 돕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내 몸에는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우울증을 앓고 있던터라 우울함을 그냥 약으로 다스렸지만 문제는 몸에서 생기는 변화였다. 다리, 특히 무릎이 아프고 그렇게 아프던 무릎이 종내는 굽혀지지 않아 걷기에 이상이 생겼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통에 무작정 정형외과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류마티스라는 병명을 앓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나 그약을 먹어도 며칠은 어느정도 차도가 있었지만 아픈건 마찬가지. 의사는 내 약에 예전에는 암환자 들에게 썼었다는 독한약을 처방하였다. 그약을 먹으면 하루 이틀은 방안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고 약기운이 가실때쯤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증상은 그냥 다리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머리가 샤워할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고 입안이 다 헐어 끼니를 흰죽만 겨우 넘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양치도 치약을 쓰면 고통스러우리만큼 입안이 아팠고 다리는 무릎을 굽히지 못해 걷지를 못하게 되었고 지독한 추위를 심하게 느끼며.빈뇨로 자주 화장실을 찾았고, 또한 동시에 몸의 여기저기에 이상현상이 일어났다.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생기자 구글검색을 통해 단순 류마티스 증세가 아니라 그 이상의 증세들이 동반한것을 자각하고 찾아보다보니 루프스라는 단어가 검색이 되었다. 단순 류마티스라면 그냥 무릎만 아프고 말 것인데 온몸이 비정상적으로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아픈곳 하나하나를 짚어서 검색하여 이게 단순 외과적인 증상이 아님을 혼자 짐작으로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던 정신과와 당시 항암치료제를 처방해준 정형외과의 소개장을 들고 지역 거점 대형병원으로 찾아갔다.이런저런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마치자 의사는 나에게 일본명 전신성 에리테마토데스, 즉 루프스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말해주었고 최대한으로 빨리 그 의사의 원래 근무지인 긴키대학병원에 입원하기를 조언하였다.당시 나는 혼자 하루종일 집에서 걷지를 못하고 자주 소변을 보고싶어지는 빈뇨로 두 팔로 기어서 화장실을 가고는 하였다. 한번일어 서려면 몸을 지탱할 여러가지 도구와 과정을 거쳐야했고 일어선다고 해도 겨우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다리를 움직이고는 하던때였다. 집안에서는 그냥 두팔로 기어가는게 걷는것보다 수월할 정도였다. 집이 엘레베이터가 없는 5층이라 겨우겨우 병상이 없어서 미루고 있던 긴키대학병원에 가기위해 나이먹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80대 할매처럼 그렇게 걸어서 1층으로 내려가 남편 경트럭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세가 매우 심할때였는데 어떻게 혼자 일어나 짐을 챙기고 그다리로 5층을 내려가 차에 올랐는지 아직도 실감이 나질않는다. 긴키대학에 가서도 혹시모를 경우를 생각해서 내장 일부를 잘라내어 조직검사를 하였고 먹고 있던 정신과약을 제외한 모든약을 새로 처방받아 들어갈 당시에는 휠체어로 들어갔지만 입원 3주 후 나올때는 두 발로 나올 수 있었다. 20대때 손발끝이 하얗게 질려 피가 안통하는 동통을 어느순간부터 달고 살아 우연히 찾은 의원에서 면역계에 문제가 있어 나이가 들면 어떤 형태로든 몸의 이상증세가 나올거라던 어느 의사의 말이 떠올랐고 정말 그 말이 예언처럼 딱 맞는셈이었다. 지금은 비록 걸을 수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루프스의 통증을 잡기위해 복용하는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으로 난 몸무게가 20킬로 이상이 쪄버렸고 이제는 내 몸에 맞는 옷이 없어 저절로 외출하기를 꺼려하게 되고 종내에는 히키코모리같은 생활을 하는 지금이다.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은 있었지만 이미 뒤룩뒤룩 살이 쪄버려 운동하는것 조차 포기해버린 난 또다른 우울감에 빠져있다.
20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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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전 남편을 호주에서 만나 긴 외로웠던 싱글생활의 공백을 깨고 그냥 따져보지도 않고 우리집 식구들의 동의도 받지 않은체 나는 호주에서 한국행이 아닌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그땐 뭐가 그리 급하고 빨리 일본으로 오지 않으면 않된다고 생각했는지 후호막심이지만 그때는 그런마음이었다.호주의 대학에 편입학하려던 남편은 호주정부로부터 강제출국이라는 명목하에 쫓겨나다시피해서 일본으로 먼저 돌아왔고 다시 돌아오겠으니 기다리고 있으란 말을 묵살하고 나는 호주에서 인종차별 당하며 사느니 일본에서 살아보고싶다고 역으로 호주 현지에서 일본어학교입학으로의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준비할 서류가 많았지만 호주에서 한국에 남아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학교 입학 준비를 맞추고 한국인 무비자입국을 이용해 먼저 다른 필요한 일본체류비자는 일본으로 들어온 후에야 일본어 학교를 통해서 학생비자를 받았다.그때는 일본어도 하지못해서 학교에서 시키는 일들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정신없이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고 일본어가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일본의 이것저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낯선사람간에 갑자기 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간다는건 쉬운건 아닌건 알지만 그래도 그 벽이 그렇게 높을거라 생각을 못했던 나로써는 일본어학교의 칼같은 딱딱한 업무대응태도와 정없음에 차가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2년이라는 일본어학원 풀코스를 마칠무렵 학교측의 제의로 최저시급의 알바를 시작하며 일본사회에 발을 들였다. 어느정도 융통성과 유들함이 있을거라 생각했던 회사에서 자기만 생각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거나 개인적인 교류라도 있을라치면 벽을 세워 거리를 두는 일본 회사사람들을 보면서 왠지모를 서운함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무슨 문제라도 있을라치면 딱히 누구하나 나서서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려하기보다는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그땐 참 싫었다. 지금이야 시간이 지나고 어느정도 몇 번의 사회생활을 거쳐가다보면서 이해가 된 부분이 생겼지만 그래도 난 일본이 싫타. 빨리빨리가 몸에 밴 탓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누가하나 적극적으로 나서 같이 힘을 보태어 문제를 해결해가는 한국사람들과는 달리 튀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며 느리게 느리게 위로 보고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겨우 답을 하사받아 일을 처리해 나가는 시스템도 싫었고 누구하나 나서려하지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 답답함을 견디기가 너무 지겨워지기 까지 굼뱅이 굴러가듯하는 시스템이 너무나 싫었다.지금이라고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까만은 이런 이유들로 난 일본이 싫고, 또힌 그런 일본사회에 다시 나가는데에 두려움이 생겨버려 난 지금 집에서놀고있다.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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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사카부에 위치한 키시와다라는 곳에서 살고있는 한국사람입니다.호주에 워킹홀리데이에 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본으로 건너와 지금까지10년을 살고 있습니다.모두들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남편들을 만나 잘 생활하시고 계시지만 전 일본와서 이곳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맞질 않는건지 10년째 다람쥐 쳇바퀴돌듯 이곳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항시 외로움을 몸에 달고 살고 있답니다.누군가 저처럼 일본생활이 녹녹치 않은 분이 있으시다면 같이 겸험과 생활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네여.이런저러 고충이 있었지만 저는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뽑으라면 사람간의 정서적 교감이 안된다는 겁니다.적당히 거리를 두고 예의를 갖추며 상대방의 프라이버시에 많은 간섭을 하지 않는 이들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는건 아닙니다.다만 그 적당하 거리로 서로의 마음을 열지않는, 무관심으로까지 보여지는 개인주의적 성향에 제가 적응을 잘 못하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요.제가 운이 나빴는지 아니면 눈치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곳마다 그게 학교이던 사회생활이던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지 못하고 항시 배제되어있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그렇게 10년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끼어들지 못해 외롭고 서운했으며, 그 다음에는 그 외로움속에서 견디지 못해서 술도 많이 마시고 울면서 힘들어 했으며 지금은 외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느낌입니다.저만 이런 고충속에 살고 있는건지 다른 한국인들은 어떻게 긴 일본생활을 살고있는지 궁금해집니다.앞으로 많은 관심과 고충에 관한 감정교류에 같이 참여해주지 않으실래요?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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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は国が広いため地域別に色々見どころ、食べところが多くて観光地として魅力がたくさんあるところです。民族も言語も、文化も、景色も違うため一ヶ所だけ行ってみて悪いと言えない面白い国ですが、色んな欠点も多いところだと思います。私は中国語が話せるため簡単なことは話が通じるため、人にたまされたりはそんなに多くはなかったけど問題はその国の特別なシステムや文化の違いで当惑することは色々ありました。今回西安旅行で私が一番不便だったのはトイレでした。すでに留学した経験があるから大丈夫だと思ってましたが、ほとんど18年の前のことだから今は改善できているんだろうと思ってたですがそれは私の完治が絵でした。18年が過ぎても変わらないところはトイレでした。中国のトイレを使う時の注意点4点。1。トイレのドアがないところが多いです。また、人と人の間に仕切りがないところも多いです。2。水圧が弱くてうんこが一回水を流すだけで大便が流れない時が多いです。3。トイレペーパーがないです。4。使用した後のトイレペーパーは流さないで、別のゴミ箱に捨てることです。今だにトイレにトアがついてないところが多かったです。ここは綺麗な方で、ムスリムクォータにある公衆トイレは入り口の遠くから臭くて、入り口の前にはゴミや色んな汚染物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もし、見たければ人のお尻をまん丸見ることができるんです。あまり見たくないけど。。ここはちょっといいところにあるトイレで、水も流れるようになってましたが、水圧が弱くてもしうんこでもしようとすれば結構困る経験をすることになったりしたのです。何回か外でうんこがしたくなってトイレを探して入りましたが、うんこの後水を流したら大便が弱い水圧のため流れなくてトイレの中で何回も水を流してやっとトイレから脱出する事ができました。このせいのなのか流れてないうんこがそのまま残ってあることろも多くて、見たくなくても前の人が中でおシコをしたのかうんこをしたのかがわかるようになってたです。また、中国のトイレは基本的にトイレペーパーがないため、うんこの後も問題でした。幸いに私はトイレペーパーを持っていましたが、もしそれを知らない人が入ったらトイレからどうすればいいか分からなくなる恐れがある事が想像できます。もし、トイレペーパーがあるとしてもそれをそのまま流してもいいのかといえば、違います。韓国層ですが使用したトイレペーパーは別のゴミ箱の中に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以上のことが分からなかったら大変困りますね。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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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山(かざん、古は崋山とも、中国語: 華山/华山、拼音: Huà Shān ファーシャン)は、中国陝西省華陰市にある山。中国五名山の一つとして、西岳とも呼ばれる。中国において、花崗岩が露出した険しい山肌が続く景勝地として知られ、国家級風景名勝区(第1期)に指定されている[1]。主に道教の修行地として利用され、山上・山麓には多くの道観が存在し、現在でも多くの道士が住んでいる。華山は最高峰である南峰(2,154m)の他に、北峰(1,614m)、中峰(2,037m)、東峰(2,096m)、西峰(2,082m)の5つから構成されている。山はほぼ全山が花崗岩で成り立っており、1000メートル以上の落差を有する岩壁が各所に見られ、それをすぐ下から眺められる場所や、すぐ上にある展望ポイントが各所に存在して、独特の景観を見ることができる。山頂周辺へのアクセス手段には、山麓にからの登山道から登る方法も当然あるが、多くの観光客は二本の索道(ロープウェイ、北峰側の三特索道か西峰側の太華索道)を使用して山上まで一気に登る方法が使われる。このうち太華索道は、2013年に開業した全長4,211mの世界最長クラスのロープウェイである[2]。もちろん元のロープウェイで下山する人もいるが、片方のロープウェイで登って、山上を巡ったあともう一つのロープウェイで下る方法を採用する人も多い。 ーウィキペディアー華山は西安市内から遠く離れていて朝早く出発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す。自分で高速鐡道に乗って行く方法もあるんですが、過去の経験上ツアーに参加した方が便利だとう事が分かっていて私たちもYOUTH HOSTELの受付からツアー参加の申請をして翌日の朝早くツアーバスが待っているところに行ってツアーに参加しました。バスーの中にはさらに他のホテルーから集まった人たちがたくさん席に座って待ってました。他のホテルに泊まっているところに行ってまた客を載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ためバスは急いで出発して、客を載せて高速道路に入り2〜3時間ぐらい走りました。旦那は自分で高速鐡道にのって行かないことを不満に思われましたが、それは中国旅行の特性を知らなくていう事だと私は確信していたので、無視しました。もし当日自分で道を探して行ってたら時間がどんなにかかるか、山登りにかかる色んな手続きや状況が知らなくてきっと大変なことになることを私はすでに経験したので簡単にツアーに参加したのです。現地の観光客です。ここはただの入り口です。ここからじゃまだ登山口ではない事が知らなかったです。ここは登山のチケット売り場でしたが、前日にすでにお金を払ったため私たちは行く必要はなかったです。実際に個人で買いに行く人も多くはないと思います。遠く見える階段。。。その時はまだ山登りがどんなにしんどいかわかる前、階段上りもどんなに疲れるか分からなかった時でした。ここは華山の入り口に行く前に山に登る全ての人が許可をもらうために寄ったところでした。ガイドさんがいるから私たちはバスから降りてトイレに行ったり休憩したりしてました。30分後ろ待つと全ての人の身分証を持って行ったガイドさんが帰ってきました。団体旅行の便利さですね。個人でいけばどんなに時間がかかるか分からないところでした。華山に着いたら時間はもうすでに12時ごろでした。西安から7時前に出発したのでどんなに時間がかかったのかわかるでしょう。ここの階段を登ったら登山口に着くと思っていたですが、それは私の勘違いでした。階段を登ったらまた他の階段が待ってました。私はこの日から急に足が痛くなってめっちゃ辛かったので階段を登るのが倍にはしんどかったです。足の痛みは帰国する時までどんどんひどくなって帰国してすぐに病院に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でしたが、その時にはまだ深刻さが分からなかったため、痛みに耐えながら我慢して山登りに行ったのです。うちの旦那と私たちと同じ宿に止まってたヨロッパ人が見えますね。歩いても、歩いても終わらない階段上りでした。写真の下に遠くから階段の入り口が見えますね。右側に見えるのは小さなローラコストみたいなもので、最初にはその用途が知らなかったですが、あとで分かりました。階段を足で登るより座って登るもう一つの選択肢でした。それに乗りたかったです。もし事前に分かってたら、足も痛いし、これに乗って階段のところを一気に登ったかもしれなかったです。いよいよ登山口に着いたです。でも人が多くて長い列の中で待っ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す。山に登る前にすでに階段登りで疲れてしまったです。ここは華山上りのケーブルカーを待つところです。人は多かったものの思ったより速くケーブルカーに乗る事ができました。でもこれはいつまでも私の考えで、実は私が推測していた待つ時間が早かっただけ。初めて行ったらここで待つ事も長く感じるかもしれないですね。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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旦那の仕事が忙しくてなかなか外出することがないですが、昨日何時間くらい時間を作る事ができるからどこか紅葉を見に行ったり釣りに行って見たりしようという事で、紅葉にも行きたかったですが、そうするためにはバスと電車に乗らなければならないし、最近は早く日が暮れるため、午後の何時間だけでは紅葉を見る時間があまりにも少なくなるので近くの海に釣りに行くことにしました。午後1時ごろ出発し、目的地は旦那の同僚が進めてくれたりんくうタウンの近くでした。その旦那の同僚はそこででっかいぶりみたいな魚を釣ったと言ったのです。で、私たちもそちらへんに行ってみようと行ってみたら。。3匹の5センチぐらいの魚を3匹つりました。餌を使わずにルアーだけを使って何回もつってみましたが。。。結論はやっぱり餌を使ったほうがよかったでした。私は釣りにはあまり興味がないため、近くのイオンモールで買った酎ハイと以下の揚げ物を食べなら旦那が速く1匹でも釣ってくることを待ってましたが、結局諦めしかなかったです。久しぶりの外出で良かったですが、旦那と10年住んでいるうち、旦那が一回も魚釣りに行って魚を釣ったことをみた事がないでした。いつかは旦那が釣った魚を見る事ができるでしょう。。。いつかはね。。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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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安1日コース旅行が終わるごろ英語のガイドさんに中国料理を食べれる飲食店を紹介してもらいました。値段もあまり高くなく、雰囲気も悪くないところを聞いて見たら彼女はムスリム地域近くにある漢族食堂を爽快してくれたです。うちの旦那は実際の中国本当の味を分からない為、私は私が中国に住んでいた時に食べていた美味しい中国の味を味わせたかったですが、残念ながら私がよく食べていた料理はここにはなかったです。中国は国が広いため地域によって食べ物も、言語も、文化も色々であるためちょっと残念でしたがここで食べたものも悪くなかったためだいたい満足でした。西安は元々小麦粉を使った色んな麺やパン料理が多く、その種類も、味も、食感も違う料理が色々あります。このハンバーガーみたいなパンも真ん中に肉料理を挟んで食べるもので、パンの食感は柔らかく、しっとりしていて噛みやすくて美味しいかったです。実はこの写真に載ってる料理の中私が実際に名前と味が分かっていて頼んだものはお酒だけでした。メニューの中に載ってる写真を見てから名前を見て味を推測してから頼んだものでした。真ん中にある瓶はお酒が好きな旦那が頼んだ中国の白酒です。大体35度をうわまるお酒でした。中国では肉料理と野菜料理が分かれてあるため、料理を頼む時、肉料理だけではなく野菜料理も一緒に頼んだほうがいいです。下の写真は大体味が花の先、カイランさいみたいな味でした。中国風の豚足です。五香の味がついている味でした。量が少なくてちょっと残念でしたが二人で食べきれない量を頼むのももったいなくてこれだけで済んだです。実はもう一皿頼みたかっがです。中国ではどこに行っても料理を頼むとこの白いやかんにお茶がついてきます。右の瓶は私のためのビールです。ムスリムの影響なのか西安ではビールのほとんどが3.5%ぐらいの弱いビールしか売ってあってお酒に酔うことはなかなかできませんでした。もしお酒に酔いたいなら白酒を頼んだほうがいいかも知れません。中国料理として私が留学する時留学生たちがよく食べていた料理を食べるのができなくて非常に残念でしたが、速くコロナが終わってまた中国旅行に行ける日がきて欲しいです。
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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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は発掘作業が終わって復旧が終わってる銅像たちがおいてました。下の写真は当時の偉い人たちを乗せる馬車を復旧したものです。この銅像は普通の兵士ではなく兵士を管理する人に思われるそうでした。馬車の馬にも高い飾りをつけていたらしいです。軍隊の将軍に思われる銅像だそうです。それはこの銅像の髪の方と衣装を見て推測したそうでした。
20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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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は発掘作業が終わって復旧が終わってる銅像たちがおいてました。下の写真は当時の偉い人たちを乗せる馬車を復旧したものです。この銅像は普通の兵士ではなく兵士を管理する人に思われるそうでした。馬車の馬にも高い飾りをつけていたらしいです。軍隊の将軍に思われる銅像だそうです。それはこの銅像の髪の方と衣装を見て推測したそうでした。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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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は2号館で今も発掘作業が進んでいるみたいでした。頭がなかったりするのはいろいろ理由があるみたいそうで、発掘の途中盗まれたり、誰かに破損されたりしていたそうでした。それ以外も理由があったですが聞いてから忘れてしまいました。下のトンネルの中にはまだ技術が発達せず、まだ発掘作業が進んでないところでした。この中にも何が入ってるかまだはっきりは分からないみたいでした。先端技術でも分からない事が大変残念に思われるところでしだが、いつかは必ず兵士たちの銅像が変色も破損もなく発掘できる日を望んでます。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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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安兵馬俑博物館記念品をいよいよ出て本当の兵馬俑博物館に行く事ができました。ここは博物館の入り口です。早く出発したため、ついたときには人がまだそんなに多くはいなかったですが、少なくもなかったです。ここは世界各地から人が集まるところですが、それでもまだまだ国内旅行客が多感じでした。それほど中国人の人口が多いという事でしょう。やーホー嬉しいつい兵馬俑をみる事ができました!!!!この人達の後ろです!!!うーわー写真だけで見てた兵馬俑が私の目の前に全開してましたこの銅像だちは発掘されてる兵馬俑であり、すべてが違う顔、身長、髪の形、模様をしているとガイドが言ってくれました。過去、こちらへんに住んでる住民たちが井戸を掘るときに偶然に発見されて、発掘が始まったそうです。実際に見た兵馬俑の兵士たちの身長が高かったですが、研究者によると銅像の平均身長が高いのは、その時代の兵士の中には中国人だけしゃなく、外国人や混血の人たちが多く同時の西安を兵士とうして守っていたからだそうでした。1号館の中においてある銅像の数は思ったより少なかったですが、その理由は今だに発掘作業が進んでて、まだまだ多くの兵馬俑が発掘されずに研究が進んでいるそうでした。元々の色は今のような茶色っぽい色じゃなくて違う色をしていたそうですが、何でか発掘してから銅像たちの変色してしまい、その原因を分からず、今の技術では変色の原因を見つかる事ができなくて、まだまだ発掘がうまく進んでいないそうでした。発掘が進んでいる現場の写真です。発掘する人の姿は見えなかったですが、速く発掘する技術が開発されてもっと立派な兵馬俑の姿をまた見にいきたいです。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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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安の名物の中の一つ、ビャンビャン面です。西安は小麦粉で作られた色んな面やパンが多いですが、その中でもビャンビャン面は味も食感もとてもいい食べ物の一つです。面はちょっと広さがあるんですが、弾力性があって食べながらもその食感に一目惚れしちゃいますもう一皿食べたかったですが、両替しておいたお金が足りなくて一皿で満足するしかなかったです。実は両替したお金も足りなくて同日に初めて知り合ったヨロッパの友たちからお金を借りてもらってビャンビャン面を味わう事ができたです。お金は翌日に銀行に行って、両替をしてから返しました。このお店もお金を貸してくれたヨロッパの友たちが紹介してくれた店でした。Youtubeにものってる店でしたが名前は忘れました。中国は有名な麺料理屋さんやギュージャ、小籠包屋に行ったら各テーブルの上にニンニクがおいてあります。私も最初には何で料理の材料がおいてあるかなと考えてたですが、その理由を後で教えてもらったです。脂っこい味を和らげるためだったです。人によっては麺料理や小龍包などの中からでる油が嫌な人もいるため、ニンニクと一緒に食べてました。私もニンニクが大好きなんでこの日ニンニクと一緒に食べたかったですが、日本人の夫はニンニクが苦手なため、私も諦めてビャンビャン面だけ食べて来ました。ちょっと物足りなかったですね。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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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馬俑博物館という名前で記念品を売ってる店を身巡って見ました。お金すらあれば全部買いたいものでしたが、配送料と財布の中を考えてみるだけにしました。昔富裕層の家庭に娘たちが使ってたベットだったらしいでした。
202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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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安旅行が初めてだったので、個人ツアーはちょっと無理かな思って泊まっていた宿泊先の受付で団体英語のツアーに参加しました。朝早くから用意してほしいと言われたので早く起きて団体に参加したら、ほかの宿泊先で予約したドイツのカップルと合流しました。でも、直接兵馬俑に行くだろうと思っていたですが、兵馬俑博物館を必ず行かなければならなくて先に博物館によりました。でも、この博物館は名前だけが博物館で、実際には有料のもの売り場でした。兵馬俑に関する色んなものを作って販売する目的であって、買い物するつもりがない人にはちょっとあれなんですけど、色んな説明と面白いものがおいてあってまあまあ面白かったです。博物館の入り口でこれだけ見て私はもう興奮し始めました。え?外国人ぽいけど。。。と思ったら、申請すれば自分とぴったりの兵馬俑の戦士になれると聞きました。大きさ事に費用は違うけど本当の兵馬俑の戦士の体に自分そっくりの頭だけ作って送ってもらう事ができるらしでした。兵馬俑の模写品です。頭だけが無い理由も誰かの頭を作ってる間に体だけをおいておいておいたです。色んな国からの人々が兵馬俑の戦士になりたいというでしょう。記念品として一つ買おうかなと思いまいたが誰も買う人がいなくて、家にも置く場所がなくて諦めました。東洋人と西洋人が仲良く兵馬俑の戦士になって博物館を飾ってました。写真の中の彼女は団体の一人、ドイツからきた人でした。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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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泊はgoogle検索を利用して繁華街と近いところにあるyou hostelにしました。中国に住んだことがあるが、私も西安は初めてだったのでムスリムクォータと近いという説明を見て直接やりとりをしてここに泊まる事にしました。Youth hestelは元々安い値段で泊まる事ができるため、周りは汚く、誰かが教えてくれないと探しにくい事があるため、空港まで迎に来てもらう事にしました。宿泊先の周辺は汚かったものの、歩いてすぐムスリム地域にたどり着いたから便利で、サービスも良く、皆が優しかったです。毎晩外から帰る道にスーパーに寄り、ビールと白酒などといろんな食べ物を買ってここの入り口においてあるテーブルで旦那と休んでました。ベットが一つあるかなと思ったですが、二つだったです。ベットに荷物をおいた痕跡があるが、実際には綺麗だったです。すぐ外が市場になっていて静かな雰囲気ではなかったですが、泊まるには問題なかったです。宿泊先の近くにあるゴミ処理場みたいなところです。まだ早い時間帯だったので人がここまでくることはなかったですが、もうちょい歩くとすぐムスリムクォークでした。ペット用なのか食用なのかよく知らない小動物が多くあったですが写真撮ると怒られるかなと思って亀だけ写真にしました。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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旦那と私は結婚式はしない事にしたので籍だけ入れて数年間新婚旅行行けなkったです。でもどうしても中国の西安の兵馬俑が見たくて3泊4日の日程で初めて一緒に国際旅行に行くことにしました。西安はムスリムの少数民族が大勢住んでいて、ムスリムクォータという地域が西安の繁華街のすぐ近くにいて、西安の人はもちろん、中国全国から来た旅行客や海外から来た外国人も多いところです。上の写真はムスリムクオーターの入り口の写真です。まだ時間が早いため人はやや少なめだったですが、夜になると多くの人が集まってにぎやかな雰囲気でした。ムスリムクォータ正門です。スタバも中国風なデザインでした。市内の真ん中にる建築物です。名前は忘れました。写真だけ見たらよくわかにくいですけど、毛っ子の大きさでした。西安中心部にあるホテルです。自分の目で見たらけっこ大きだったので写真をとったですがホテルが長すぎて全部プレムの中に入れるのができなかったです。ムスリムクォータの中にあるムスリム寺院です。入場料を払って入るところでしたが、私も旦那もムスリム寺院についてよくわからないせいで外から若干見えるところだけ写真を取りました。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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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動画人気ベビーソング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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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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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動画人気ベビーソング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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速く終わりそうだったニンニク植え作業がやっと終わりました。まだニンニクの芽出しが残ってますがしばらくは様子を見ることにしました。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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喉歌(のどうた、Throat-singing, Overtone-singing)は、喉を詰めた発声から生じるフォルマントを利用した、笛のような音などを特徴とする声を用いた特殊な歌唱法。器楽的特徴をもつ歌唱法で基音と倍音を同時発声する倍音唱法の一種である[2]。 極東地方に広く伝承されており、アルタイ山脈周辺の民族のカイ、モンゴル国のホーミー、トゥバ共和国のフーメイ(ホーメイ)などがよく知られている[2]。イヌイット、アイヌ、チュクチ人など北太平洋沿岸の諸民族の「喉遊び」(Throat-playing)も喉歌と呼ばれることがある。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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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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喉歌(のどうた、Throat-singing, Overtone-singing)は、喉を詰めた発声から生じるフォルマントを利用した、笛のような音などを特徴とする声を用いた特殊な歌唱法。器楽的特徴をもつ歌唱法で基音と倍音を同時発声する倍音唱法の一種である[2]。 極東地方に広く伝承されており、アルタイ山脈周辺の民族のカイ、モンゴル国のホーミー、トゥバ共和国のフーメイ(ホーメイ)などがよく知られている[2]。イヌイット、アイヌ、チュクチ人など北太平洋沿岸の諸民族の「喉遊び」(Throat-playing)も喉歌と呼ばれることがある。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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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だけじゃないですね。。。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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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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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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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璧な童心破壊。。。私が想像したのはこれじゃないのに。。。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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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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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にんにく植えはまだ続いてます。畑が広くてなかなか時間がかかるものの頑張ってます。毎日頑張ってるけどまだこんなにたくさん植える場所が残ってますね。。。牛糞の下からニンニクの芽がちょびっと見えてます。可愛いですね。先輩のニンニク君植えてから間も無くもう芽を出してます。えらい〜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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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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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伝統音楽に現代音楽が一緒になって作られた音楽です。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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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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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れは遊びじゃ無く、実際にアフリカのガーナで行われているお葬式で、異色的な御葬式文化です。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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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伝統音楽に現代音楽が一緒になって作られた音楽です。ㅓㅓㅓ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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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近少しずつ冷たい風が吹いてきて季節の変化を感じまう。今日はニンニク植えの用意をしました。まず土地を整えます。整えた土に鶏糞をいっぱい入れて栄養だっぷりの土を作ります。一々手で整えるのは面倒ですが、これでニンニクを植えるようができます。この間先に植えておいたニンニクは先に芽が出てきましたね。ニンニクを植えた後には再び牛糞を乗せ速く芽がぐんぐん育ちように!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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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は栄養たっぷりの牛糞を巻いて、土を整えてから白菜の苗を植えました。去年は植える時期をちょっと逃して白菜に育ちがやや悪かったけど、今年はもうちょっと急いで植えるようにしました。今年の白菜は大きくて美味しい白菜になれるように!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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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年2回目のもちトウモロコシを植えて、今収穫を待ってました。しかし、ガラスかそれともあらいぐまなのかよく分からない動物がきてその被害が酷いです。一生懸命植えたのに。。。それで今年スイカ畑で使っていた電気柵を設置して見ました。太陽光パンネルで充電するようになってるけど、正直にちゃんとやくに立ててるのかよく分かりません。ここの面積はまだ小さいためちゃんと囲うことができましたが、ほかのところに植わっているもちトウモロコシも心配ですね。市役所からあらいぐま用のトラップも借りておいてますけど、なかなか措置までは反応が来ません。周りが全部畑だからなんらかの野生動物があるのはおかしくないけど、被害にあったタラむかづくのは仕方がないです。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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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当に久しぶりに大阪万博公園で開かれたゲンキパークに遊びに行ってきました。遊びにはチキンが無くてはならないですもん〜万博公園のランドマークが見えますね。前日雨が降ってたから心配してましたが、この日は晴れていて暑くも寒くもなかったです。前日降った雨のせいで芝生が濡れてましたが、GENKI PARKからもらった敷くものがあって本当に助かりました。ここまではまだ公演が始まらず、皆がおとなしく座ってましたが。。。公演が始まり色んなアーティストたちが歌い始めると皆が一緒に立って公演を楽しんでました。上の写真はまだ公演が始まる前、下は公演が始まった後。皆が楽しめる面白い公演でした。残念ながら私にはあまり知らぬアーティストばかりでしたが、それでも久しぶりに外出することができ、嬉しい1日でした。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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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からあちこち勝手に生えてる雑草を一所懸命名拔いてる白川さん。あちこちばらばらいっぱい生えてます。くそ。1日中したらこれだけ雑草抜きと大根の間引きが終わりました。でも画面には見えないが、まだいっぱいはえってます。。。まだこれだけ生えてる雑草を続けて抜かないとダメですね。。。明日も一所懸命やろう!よし!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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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は栄養たっぷりの牛糞を巻いて、土を整えてから白菜の苗を植えました。去年は植える時期をちょっと逃して白菜に育ちがやや悪かったけど、今年はもうちょっと急いで植えるようにしました。今年の白菜は大きくて美味しい白菜になれるように!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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